포르투갈은 대서양을 마주한 유럽의 끝자락에서 깊은 역사와 감성을 간직한 나라로, 그 문화 전반에는 ‘사우다지(Saudade)’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애잔한 정서가 흐르고 있다.
사우다지는 그리움과 상실, 애도와 희망이 뒤섞인 감정이며, 이러한 감정을 가장 진하게 담아낸 음악이 바로 ‘파두(Fado)’다. 파두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전통 음악 장르로, 단순한 민속가요를 넘어 민족의 정체성과 정서를 압축한 예술로 평가받는다. 특히 파두 중에서도 고인을 추모하거나 상실의 감정을 노래하는 곡들은 장례나 추도 문화와 깊게 연결되어 있으며, 포르투갈인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파두는 단순한 예술 장르가 아니라, 인간이 겪는 상실과 이별의 감정을 해소하고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
포르투갈인들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때 파두를 듣거나 부르며, 고인의 삶을 회고하고 애도를 표현한다. 장례식장에서 직접 연주되지는 않더라도, 장례 이후 이어지는 가족 모임이나 회상의 자리에서 파두는 자연스럽게 등장하며, 고인을 기리는 정서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본 글에서는 ‘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라는 틀 속에서 파두가 포르투갈의 추도 문화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탐색하고, 애가로서의 파두가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의 애도를 이끌어내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파두의 기원과 상실의 정서
파두는 19세기 초 리스본의 항구 도시에서 시작된 음악 장르로, 뱃사람과 노동자, 상실을 안고 살아가던 서민들의 삶 속에서 태어났다.
초기 파두는 술집이나 거리에서 즉흥적으로 불리는 음악이었으며, 연인의 죽음, 돌아오지 않는 항해자,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잃어버린 낭만 등을 주제로 삼았다.
그 안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회피가 아니라, 오히려 담담한 수용과 정서적 동화가 깔려 있었다.
이러한 정서는 곧 포르투갈 사람들의 장례문화 및 추도 태도와도 연결되었다. 파두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가수인 아말리아 로드리게스(Amália Rodrigues)는 “파두는 나의 영혼을 노래하는 방식이며, 내가 잃어버린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인 ‘Gaivota(갈매기)’는 고인을 하늘로 떠나는 존재로 은유하며, 남겨진 이의 깊은 상실감을 고요한 슬픔으로 노래한다.
파두는 애도의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면서도, 그 슬픔을 삶 속으로 끌어안고 나아가는 힘을 준다. 따라서 포르투갈에서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파두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추모의 정서를 전달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장례식 전후의 비공식 모임이나 가족 간 회상 시간에 파두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고인이 생전에 즐겨 듣던 파두가 회상과 함께 재생될 때, 그 곡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살아 있는 기억의 매개가 된다.
장례와 일상의 경계에서 울려 퍼지는 파두
포르투갈의 전통 장례문화는 가톨릭 의례에 기반한 구조를 따르면서도, 그 주변에서는 파두와 같은 민속 문화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고인이 사망하면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집전되고, 가족과 지인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기도와 성가를 함께 드린다. 그러나 이 공식적인 의례가 끝난 이후, 유족들이 고인을 회상하고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비공식적인 시간에는 파두가 종종 배경으로 흐른다.
고인의 생전 즐겨 들었던 파두 곡을 가족들이 함께 들으며 생전의 모습을 되새기거나, 친한 지인이 직접 파두를 부르며 고인을 기리는 경우도 있다. 파두 가사에는 슬픔뿐 아니라, 고인을 향한 존경과 감사, 그리고 사후의 평안을 기원하는 따뜻한 언어가 담겨 있어 유족의 감정을 정서적으로 정리해주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특히 시골 마을이나 전통이 강한 지역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음악을 통한 추도’가 장례 절차의 자연스러운 일부처럼 받아들여진다.
슬픔에 잠긴 이들이 파두의 멜로디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정서적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리스본 외곽의 한 카사 드 파두(Casa de Fado)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장례 이후 ‘고인을 위한 마지막 노래’ 시간을 별도로 마련하기도 하는데, 이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적 추모의 대표적인 사례다. 파두는 눈물과 침묵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애잔한 기타 선율과 담담한 목소리를 통해 상실의 아픔을 가만히 곁에서 끌어안아주는 역할을 한다.
공동체 추도의 문화와 음악의 힘
포르투갈에서는 죽음을 개인의 고통으로만 남기지 않고, 공동체 전체가 함께 애도하는 과정으로 여긴다. 이러한 문화는 파두의 공연 구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소규모 카사 드 파두에서는 가수가 노래를 시작하면 청중이 조용히 음악에 집중하며 감정을 공유하고, 노래가 끝나면 박수보다는 짧은 침묵과 고개 끄덕임으로 감사를 전한다. 이러한 형식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공동체적 감정의 흐름을 확인하는 일종의 의례와도 같다.
장례식 이후 가족들이 모여 파두를 함께 듣는 시간은 그 자체로 애도의 연장선이며, 이때 나누는 기억과 눈물, 때로는 웃음은 고인을 추모하는 공동의 방식이 된다. 한 곡의 파두가 고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도, 그 정서 안에 담긴 보편적인 상실의 감정은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된다.
파두 가사 속에는 이름 없는 이들의 삶, 반복되는 상실, 기다림, 후회, 용서 등이 담겨 있어 청중 각자의 경험과 공명하게 되고, 이는 고인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다시 성찰하는 시간으로 확장된다. 음악을 통해 이뤄지는 이러한 집단적 추도는 장례 이후 슬픔을 마무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포르투갈 사회가 죽음을 감정적으로 어떻게 다루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고인이 남긴 마지막 파두 한 곡이 가족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며, 추모의 언어로 계속 살아남는 경우도 있다. 이는 말로 하지 못한 감정을 음악이 대신 전달해주는 포르투갈 특유의 슬픔 해소 방식이다.
현대화된 장례 문화와 파두의 재해석
21세기 포르투갈에서도 파두는 여전히 살아 있는 문화로, 장례문화 속에서 그 역할이 조금씩 변화하면서도 본질은 유지되고 있다. 현대식 장례식장에서는 엄숙한 클래식 음악이나 종교적 음악이 주로 사용되지만, 가족의 요청에 따라 파두가 포함되기도 하며, 고인의 생전 취향이나 성격을 반영한 맞춤형 음악 장례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리스본과 포르투에서는 장례식장 내에서 ‘고인 헌정 영상’과 함께 파두를 삽입하거나, 장례 후 가족 모임에서 추모 파두 리스트를 공유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스트리밍 플랫폼의 발달로 고인의 생전 애창곡을 가족들과 나누고, SNS를 통해 파두 가사와 함께 고인을 추억하는 게시물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전통적인 파두보다 현대적인 해석이 가미된 ‘누에보 파두(Novo Fado)’를 통해 고인을 기리는 경우도 있으며, 이처럼 세대와 방식은 다르지만 음악을 통한 추모의 중심에는 여전히 파두가 있다. 음악은 슬픔을 견디는 데 필요한 말 없는 언어이며, 파두는 포르투갈인에게 있어 그 언어의 가장 정제된 형태이다. 이는 ‘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 속에서도 포르투갈이 보여주는 독특한 애도의 방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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