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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

와하비즘 장례법과 ‘24시간 매장’의 종교 규율

by foco37god 2025. 7. 19.

이슬람 사회에서 장례는 단순히 고인을 보내는 의례가 아니라, 신의 뜻과 계시에 따라 철저히 실행되어야 하는 중요한 종교적 행위이다.

그중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확산된 **와하비즘(Wahhabism)**은 이슬람의 가장 원형적 형태로 돌아가려는 보수적 개혁주의 운동으로, 삶의 모든 측면에서 불순한 요소를 제거하고 순수한 신앙으로 복귀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러한 경향은 장례문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며, 장식과 감정의 표현을 배제하고, 의례의 속도와 순수성을 중시하는 독특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특히 ‘24시간 내 매장’ 원칙은 와하비즘 장례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위생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관습이 아니라, 코란과 하디스의 해석을 바탕으로 고안된 신앙적 실천으로 간주된다.

죽음을 신속히 처리함으로써 고인의 영혼이 신의 심판을 기다리는 세계로 즉시 들어갈 수 있게 하며, 살아 있는 자들에게도 신 앞에 겸손함과 경건함을 상기시키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 이 글에서는 ‘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라는 주제 속에서 와하비즘 장례문화의 형성과 철학, 구체적 절차,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전통적으로 진행되는 와하비즘 장례 의식

 

1. 와하비즘의 신학적 기반과 장례문화의 철학

 

와하비즘은 18세기 아라비아 반도에서 무함마드 이븐 압드 알 와하브라는 종교개혁자가 주창한 사상이다. 그는 이슬람이 원래의 순수한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미신과 지역적 전통에 물들었다고 보고, 예언자 무함마드와 초기 공동체의 생활방식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와하비즘은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모든 종교적 실천을 코란과 하디스에 기반한 원칙에 맞게 정비하려 했으며, 불필요한 장식, 감정 과잉, 미신적 요소는 철저히 배격되었다.

장례문화 또한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와하비즘은 죽음을 하나의 자연적 현상이나 감정의 폭발로 바라보지 않고, 신의 명령이 실현되는 순간으로 인식한다.

고인의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지만, 영혼은 곧 신의 심판을 향해 이동하며, 그 이동은 가능한 한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 슬픔이나 미련, 인간적인 아쉬움도 모두 절제되어야 하며, 오히려 살아 있는 자들이 신의 뜻을 인식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와하비즘 장례문화는 외형적으로는 간결하고 조용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깊은 신앙적 순응과 결단의 장이라 할 수 있다.

 

 

2. ‘24시간 매장’ 원칙의 구조와 종교적 배경

 

와하비즘의 장례 절차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은 ‘24시간 내 매장’ 규율이다. 이는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코란과 하디스에서 권장되는 ‘신속한 매장’ 원칙을 와하비즘은 신의 명령에 따른 실천적 율법으로 엄격히 해석한다. 죽은 자의 시신을 가능한 한 빠르게 정화하고 매장함으로써, 고인의 영혼이 머물지 않고 즉시 사후 세계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는 두 가지 신학적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첫째는 죽은 자에 대한 자비이다. 불필요한 지연 없이 장례가 치러져야, 고인의 영혼이 불안정한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신 앞에 설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산 자에 대한 훈육이다.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삶의 유한성’을 각인시키고, 언젠가 자신 또한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됨을 깨달아 신앙적으로 더욱 철저하게 살 것을 촉구하는 기능이 있다.

따라서 와하비즘에서 장례의 신속성은 인간 중심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신 중심의 가치 체계를 그대로 반영한 실천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감정은 자제되고, 장례는 의무의 일환으로 조용히, 그러나 경건하게 치러진다.

 

 

3. 장례 절차의 구성: 정결, 기도, 매장의 흐름

 

와하비즘의 장례 절차는 일반적인 이슬람 장례와 구조는 유사하지만, 세부 해석과 실천에서 훨씬 더 엄격하고 단순하다. 시신은 먼저 ‘그슬(ghusl)’이라는 정결 의식을 통해 씻겨진다. 이 정결은 반드시 동성의 가족이나 신앙심 깊은 사람이 담당하며, 흐르는 물을 사용해 신체를 세 번 이상 정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후 수의(kafan)로 싸이게 되며, 이 수의는 흰색 면으로 된 간단한 천으로, 어떠한 장식도 허용되지 않는다.

정결 후 공동체는 ‘자나자(janazah)’ 기도를 드리게 되는데, 이는 일반적인 예배와 달리 절을 하지 않고 서서 진행된다. 고인을 위한 용서와 신의 자비를 구하는 이 기도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간결하게 마무리되며, 참석자들은 곧바로 시신을 운반해 무덤으로 향한다. 무덤에서는 고인의 몸을 오른쪽 방향으로 눕혀 묻고, 관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와하비즘 전통에서는 관 없이 직접 흙에 묻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

묘비 또한 화려한 장식 없이, 이름과 날짜만을 간단히 표시하거나 아예 아무런 표시 없이 매장되기도 한다.

울부짖음, 과도한 곡, 꽃이나 사진을 통한 장식은 와하비즘 장례에서 엄격히 금지된다. 고인을 위한 진정한 예우는 ‘조용히, 빠르게, 순수하게’ 매장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외부인의 시선에는 무정하게 보일 수 있지만, 와하비즘 공동체 내부에서는 오히려 신에 대한 최고의 순응과 예의로 간주된다.

 

 

4. 현대 사회에서의 적용과 문화적 긴장

 

오늘날 와하비즘 장례문화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꾸준히 실천되고 있으며, 일부 보수적 이슬람 공동체에서도 채택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무슬림 사회가 다양화되고, 국가마다 장례 관련 법률과 인프라가 다르기 때문에 와하비즘식 장례를 전면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환경도 존재한다. 특히 이민자 사회나 다문화 국가에서는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친척들이 모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 ‘24시간 내 매장’ 원칙이 현실적으로 도전받는 경우가 잦다.

이 외에도 와하비즘 장례문화는 그 절제된 형태로 인해 일부 무슬림이나 타 종교인들에게는 감정적 위로의 부재, 인간적인 온기 부족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와하비즘 공동체 내부에서는 이러한 절차가야말로 진정한 신앙적 장례이며, 신과 고인 모두에 대한 최상의 예라고 믿는다. 이는 장례라는 의례가 단지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의 신념과 세계관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실천임을 보여준다.

결국 와하비즘 장례문화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종교적 대답이며,
이는 현대적 다원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강한 정체성과 신념을 유지하며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