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

말레이시아 이슬람 매장법: 믿음과 관습의 조화

foco37god 2025. 7. 6. 09:28

말레이시아는 국토의 60 %가 열대우림으로 뒤덮인 다민족·다종교 사회다.

말레이계가 전체 인구의 55 % 정도를 차지하며,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신앙한다. 국교(國敎)는 아니지만 헌법 3조가 “이슬람은 연방의 종교”라고 명시할 만큼 공적 생활 전반에 샤리아(Sharīʿah)가 깊숙이 스며 있다.

그럼에도 말레이시아의 장례문화는 아랍 반도·남아시아와 달리 지역 전통 관습(adat)과 이슬람 율법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열대 기후 특유의 고온다습 환경, 역사적으로 축적된 힌두-불교적 장송(葬送) 요소,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된 아체·자바·하디람라우(예멘)식 의례가 복합되면서 고유한 ‘말레이 이슬람 매장법’이 형성된 것이다.

본문은 이슬람 경전이 제시한 기본 원칙과 말레이 전통 장례문화가 어떻게 공존·융합했는지 분석하고, 현대 도시화·환경 문제 속에서 장례 절차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살펴본다. 더불어 각국 전통 장례문화가 직면한 보편 과제—토지 부족, 다문화 충돌, 지속가능성—를 말레이 사례로 조망한다.

말레이시아 이슬람 매장법

 

 

말레이 이슬람 장례문화의 기원과 사회적 맥락

 

13세기 말 수마트라 팔렘방의 스리위자야 해상왕국이 쇠락하며, 이슬람 상인·수피 전승(傳承)이 말레이 제도 전역으로 퍼졌다. 말라카 술탄국(15세기)은 샤피이파(Shāfiʿī) 학파를 국시로 채택했으나, 산악·농경 지역에 뿌리내린 본모계적 말레이 문화는 이미 힌두-불교 의례 요소를 생활 속에 녹여 두었다.

장례 분야만 하더라도 전통 장례문화의 향취가 짙다. 예컨대 고인이 임종할 때 가족이 ‘방가왕(Bangawang·대나무 뿔피리)’을 불어 혼을 달래는 풍습, 사망 7일 뒤 ‘톡 킨(talkin)’ 때 묘 앞에 난초잎과 라임 슬라이스를 뿌리는 관습은 이슬람 율법서에 근거가 없지만 농촌 말레이 사회에서는 ‘영혼을 시원하게 한다’는 토속신앙으로 존속한다.

또한 무슬림 다수국가에서 흔치 않은 ‘봉분 없는 평장’ 대신, 말레이시아는 낮은 돌 난간을 둘러 배수로 확보 후 화강암 경판에 꾸란 구절을 새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열대성 폭우·홍수로 인한 토사 유실을 막기 위한 발달사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기후·환경이 장례 절차 형태를 규정한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장례 절차의 주요 단계와 종교적 의미

 

말레이 이슬람 매장법의 핵심은 즉시성, 정결, 검소 세 가지다.

첫째, 사망 확인 후 24 시간 이내 매장을 권고한다. 고온다습한 환경은 부패 속도를 빠르게 하므로 쿠알라룸푸르의 대형 병원 장례부는 냉동 보존을 최장 48 시간만 허용한다.

둘째, ‘만디 제나자(Mandi Jenazah·전통 세정)’에서 여성·남성 전담 팀이 꾸란을 암송하며 따뜻한 물에 캄포나무 가루·파초 잎·자스민 오일을 섞어 세 번(오른쪽·왼쪽·전체) 씻긴다.

세 번째 세정 직후 남성은 세 장, 여성은 다섯 장의 흰 무명 천으로 ‘카판(Kafan)’을 두르는데, 말레이 전통 직조 ‘송켓(Songket)’을 첫 겹 바깥에 덧대는 관습도 있다. 셋째, 동네 모스크 마당이나 장례전용 홀에서 ‘살라트 제나자(Salāt al-Janāzah·장례 예배)’가 열리며, 참여 인원은 최소 40명을 이상적으로 본다.

이는 ‘꾸란은 40번 낭송될 때 천사가 영혼을 천국으로 옮긴다’는 하디스 해석을 근거로 한다. 넷째, 매장은 예외 없이 평장(平葬)이다. 묘혈은 고인의 키보다 약간 깊게 파고, 다리를 가볍게 굽혀 메카(기블라) 방향인 북서쪽으로 시신을 눕힌다. 관이 없는 나지(Najī) 매장법이 원칙이지만, 도시 지역에서는 방부 처리된 소나무 관을 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토양을 덮을 때 맨손으로 첫 삽을 뜨는 ‘투각 탄간(Tugag Tangan)’ 의례는 가족 공동애를 재확인하는 순간이다.

 

토지 제약·환경 문제·도시화 속 전통의 적응

 

쿠알라룸푸르·페낭·조호르바루처럼 고밀도 지역은 묘지 부지 확보가 최대 난제다.

연방정부는 2022년 ‘이슬람 공영묘지 로드맵’를 통해 △30년 후 무연고 묘 개장 재사용 △2층 수평형(burial deck) 묘역 시범 도입 △바이오분해 포대와 야자섬유 패널 사용을 장려하는 친환경 매장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통주의자들은 “땅이 부족하면 정부가 토지를 추가 매입해야지 무덤을 재사용하는 건 불경”이라며 반발했다.

흥미롭게도 페락주 이포에서 실험한 ‘움폭형 집중 묘지’는 열대 폭우의 배수 성능과 전통 평장을 결합해 2024년 전국 이슬람학자회의(MKI)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도입된 ‘디지털 쿠인(Qo’in·온라인 추도 플랫폼)’은 장례 예배를 실시간 스트리밍하고, AI 음성으로 꾸란을 24시간 낭송해 주는 기능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이는 네팔 화장터의 전기화장 논쟁이나 일본 도쿄 VR 추모관처럼 전통 장례문화가 기술·환경 현실과 접목하며 변화를 모색하는 세계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다문화 사회 속 장례 갈등과 관용의 실천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중국계·인도계가 공존하는 만큼 장례 갈등도 빈번하다.

무슬림과 비무슬림 간 혼인 후 사망자가 개종 여부를 두고 분쟁이 생기면, 각 주 이슬람 재판소(마흐카마 샤리아)와 민사법원이 병행 관할한다. 2016년 ‘린다 수 행(Linda Soo Heng) 사건’에서는 중국계 아내가 “남편은 생전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회사 동료들의 증언으로 무슬림 매장이 확정돼 큰 논란을 낳았다.

정부는 이후 ‘장례 전 개종 서면 확인제’를 도입해 분쟁을 줄였다. 또한 육류·음식 금기 등으로 장례 연회가 제한적이지만, 사후 40일·100일 추모와 ‘할 라야(Hal Raya)’ 기간 음식 나눔 문화가 접목돼 다문화 간 상호 이해가 넓어지는 사례도 있다.

최근 청년 세대는 녹색 장례와 사회적 책임을 중시해 ‘공동묘지 주변 플라스틱 제로 캠페인’ ‘친환경 공양 음식’ 같은 프로젝트를 조직하며 매장법을 시대 가치와 연결한다.

이처럼 말레이 이슬람 장례 절차는 경전 준수와 지역 관습, 다문화 공존을 조화롭게 엮어 나가며, 각국 장례 절차가 직면한 보편 난제를 해결할 실험장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