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의 탕이하(Tangihanga), 3일간의 애도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오랜 세월 동안 고유의 정신적 유산을 지켜온 공동체이다.
그들의 문화는 단순한 전통의 집합이 아니라,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조상과 후손 간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철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마오리족의 장례문화인 ‘탕이하(Tangihanga)’는 그러한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중요한 의식이며, 고인을 애도하고 공동체가 함께 기억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통과의례로 자리 잡고 있다.
탕이하는 일반적으로 3일 동안 진행되며, 고인의 시신이 마오리의 집회 장소인 마라에(Marae)에 안치된 후 가족과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 슬픔을 나누고, 고인의 삶과 정신을 기린다.
하지만 이 의식은 단순히 애도에 그치지 않는다. 고인의 영혼이 조상들의 세계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동시에, 남겨진 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상실을 극복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재통합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라는 주제 속에서 마오리의 탕이하가 지닌 상징성과 구성, 그리고 문화적 지속 가능성까지 함께 살펴본다.
1. 마오리족의 죽음 인식과 탕이하의 철학적 기반
마오리족은 인간의 죽음을 끝이 아닌 전환점으로 바라본다.
육신은 대지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와이루아(Wairua)라는 형이상학적 실체로 존재하며, 선조들의 세계인 테 포(Te Pō)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이처럼 생과 사가 단절이 아닌 순환의 일부로 여겨지는 세계관은 탕이하의 모든 절차에 관통하는 핵심 철학이다. 고인의 삶은 공동체 안에서 계속 기억되고, 그의 영혼은 다시 자연과 조상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신성한 여정을 걷는다.
탕이하는 단순한 장례식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책임과 참여를 요구하는 의식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뿐만 아니라 부족 전체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가 남긴 발자취를 함께 되새기며, 공동체의 연대를 확인하는 시간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마오리 사회는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구성원 모두가 한 단계 더 성숙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따라서 탕이하는 단순히 시신을 매장하는 기술적 행위가 아니라, 영혼과 정신, 공동체의 관계를 복원하는 고도의 문화적 장치로 볼 수 있다.
2. 탕이하의 의식 구성과 3일간의 애도 과정
탕이하는 전통적으로 3일간 마라에(Marae)에서 진행되며, 의식은 고인의 시신을 마라에로 옮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고인을 기리는 각종 예식과 의례가 이어지는데, 이 과정은 애도와 추모를 넘어 고인의 삶을 공동체의 일부로 다시 통합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첫째 날은 포휘리(Pōwhiri)라고 불리는 환영의식으로 시작되며, 이때 공동체 구성원들이 고인을 맞이하고 가족들을 위로한다. 이 환영의식은 단순한 인사 수준이 아니라, 고인의 존재를 마오리 공동체의 정신적 공간으로 다시 초대하는 의미를 지닌다.
둘째 날에는 고인을 기억하는 연설과 노래, 이야기, 기도가 이어진다. 각 참석자는 차례로 앞에 나와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고, 그가 공동체에 남긴 가치를 되새긴다.
이 과정에서 와이아타(Waiata, 전통 노래)와 하카(Haka, 의식적 무용)가 함께 진행되며, 공동체는 고인을 육체적으로 떠나보내는 동시에 정신적으로 영원히 품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 셋째 날에는 작별의식이 이루어지며, 고인의 시신은 전통 방식에 따라 매장되거나 화장된다. 이후 하카리(Hākari)라 불리는 공동 식사가 열리며, 이 장은 단절을 치유하고 공동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마무리 의식이다.
3. 탕이하에서의 말, 노래, 춤이 지닌 문화적 힘
탕이하에서는 말과 노래, 춤이 모두 장례 절차의 일부로 작용하며, 이들은 단순한 표현 수단을 넘어 영적이고 정서적인 통로로 기능한다.
마오리 문화에서 말(코레로)은 진실과 영혼의 목소리를 담는 신성한 도구로 여겨지며, 특히 고인을 기리는 연설은 그 사람의 존재를 공동체 내에서 재정의하는 역할을 한다. 각 연설자는 고인의 삶의 순간들을 되새기며 개인적 기억과 사회적 기여를 엮어낸다. 이를 통해 고인은 더 이상 하나의 사망자가 아니라, 집단 기억의 일부로 승화된다.
노래인 와이아타는 감정을 정제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다. 슬픔, 사랑, 존경, 감동의 감정이 하나의 멜로디 안에 담겨, 말로는 전하기 어려운 고요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또한 하카는 보통 전쟁 전에 수행되던 퍼포먼스로 잘 알려져 있지만, 탕이하에서는 강한 감정을 표현하고 고인을 향한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몸짓 언어로 사용된다. 이처럼 언어, 음악, 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탕이하는 고인을 둘러싼 기억과 정체성을 공동체 전체가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강력한 문화 장치로 작용한다.
4. 현대 사회에서의 탕이하의 지속과 변화
오늘날 뉴질랜드는 다문화 국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전환 속에서 마오리의 전통 장례문화인 탕이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진행되며 과거처럼 3일간 마라에에 머물며 공동체 전체가 모이기 어려운 경우도 많아졌고, 일부 절차는 간소화되거나 생략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마오리족은 탕이하의 본질을 지키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탕이하는 단지 전통을 지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대적 삶의 방식과 유연하게 접목되며 진화하고 있다. 일부 마오리 공동체는 도심에서도 간이 마라에를 마련해 탕이하를 지속하며, 젊은 세대에게 전통의 의미를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정부나 교육기관에서는 마오리의 장례문화를 존중하고 보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있으며, 탕이하에 대한 인식 또한 마오리 문화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탕이하가 과거의 유물로 남지 않고, 공동체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계속해서 영적 중심축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