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

파리 공동묘지에서 본 프랑스 도시 장례문화

foco37god 2025. 7. 22. 20:23

서론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기억하느냐는 그 사회의 문화와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어떤 사회는 죽음을 철저히 숨기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루는 반면, 또 다른 사회는 삶의 일부로 수용하며 일상 속에 통합시키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는 후자의 대표적인 예다. 특히 파리 시민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는 방식은 장례 절차뿐 아니라 도시 구조와 공간 활용 방식에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다. 파리의 공동묘지들은 단순히 매장지를 넘어서 문화, 예술, 철학이 공존하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곳에서는 죽음이 더 이상 단절의 상징이 아니라, 사회적 기억의 연장선이며 개인의 삶을 정리하고 재해석하는 통로로 여겨진다. 프랑스의 장례문화는 공동묘지를 통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으며, 이는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의 고풍스러운 묘비 풍경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도시: 파리 공동묘지의 존재 방식

 

파리에는 대표적인 공동묘지만 해도 20개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페르 라셰즈(Père Lachaise), 몽마르트르, 몽파르나스 공동묘지는 단순한 묘역이 아니라 파리 시민들이 즐겨 찾는 역사와 예술의 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페르 라셰즈는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지시로 설립된 이래,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 예술가, 사상가, 정치인의 묘가 들어서면서 하나의 문화 유산으로 자리잡았다. 오스카 와일드, 쇼팽,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 같은 인물들의 묘지는 매년 수많은 관광객과 추모객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이 공동묘지들은 단지 죽은 자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파리 시민들은 이곳을 산책로로 활용하고, 가족 단위로 주말 나들이를 오기도 한다. 묘비에는 고인의 생애를 상징하는 시구나 철학적 문장이 새겨져 있고, 각 묘역은 조각상이나 꽃으로 꾸며져 마치 야외 미술관을 연상케 한다. 이는 프랑스가 죽음을 숨기기보다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문화적 태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파리에서는 죽음을 격리된 공간이 아닌 도시의 일부로 수용하고 있으며, 이는 도시민들이 삶과 죽음을 하나의 흐름 속에서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프랑스식 장례 절차와 시민들의 죽음 인식

 

프랑스의 장례 절차는 대체로 세속적이고 개인 중심적이다. 사망 후 대략 6일 이내에 장례가 이루어지며, 매장과 화장 중에서 선택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공간과 환경 문제로 인해 화장이 점차 늘고 있으며, 전체 장례 중 60% 이상이 화장 방식으로 치러진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화장을 선택한 경우에도 많은 이들이 유골함을 공동묘지에 안치하며, 이를 통해 고인의 존재를 도시 속에 남겨두고자 한다는 점이다.

장례식은 고인의 생애와 가치관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음악, 낭독문, 추도사가 중심이 되며, 참석자들은 검은 옷차림보다는 고인을 상징하는 색상이나 의미 있는 소품을 착용하기도 한다. 시민들은 죽음을 단절이나 두려움이 아닌, 하나의 삶의 마무리이자 공동체의 기억으로 인식한다. 이런 인식은 묘비 설계에서도 드러난다. 단순한 정보뿐 아니라, 고인의 철학과 세계관을 녹인 문장, 가족들의 메시지, 예술적 이미지 등이 함께 새겨지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장례문화의 핵심은 결국 ‘죽음 이후에도 사회적 존재로서 존엄을 유지하는 것’이다.

 

공동묘지의 사회적 역할과 도시문화 속 활용

 

프랑스의 공동묘지는 단순히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산 자들이 죽음을 사유하고, 기억을 정리하며, 삶의 방향을 다시 잡는 공간으로 적극 활용된다. 파리 시민들은 공동묘지를 찾아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묘역을 둘러보며 역사와 철학을 나눈다. 이는 죽음을 일상 속에서 터부시하지 않고, 열린 대화의 주제로 삼는 프랑스 사회의 건강한 죽음 문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묘지 활용 방식은 도시의 공간 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도시 계획 단계에서부터 묘지가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고려되며, 접근성, 조경, 시민 이용 편의 등이 반영된다. 묘지의 외형도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다양한 예술적 시도가 이루어진다. 일부 묘지에서는 음악회나 철학 토론이 열리기도 하며, 이는 죽음을 하나의 공공 담론으로 끌어올리려는 문화적 실험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는 묘지를 통해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메시지를 넘어서, ‘죽음을 통해 삶을 성찰한다’는 문화적 태도를 도시 전반에 심어놓은 셈이다.

 

다른 나라 장례문화와의 비교를 통한 차별성 부각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장례를 가능한 한 조용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장례식은 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간 이루어지고, 이후에는 납골당 또는 화장 방식으로 안치되며, 묘소는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마련된다. 죽음은 슬픔과 단절, 그리고 말하지 않아야 할 주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경우에도 공동묘지는 대부분 도시 외곽에 위치하며, 평상시에는 잘 찾지 않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이는 죽음을 일상에서 분리하고 가능한 한 거리를 두려는 문화적 경향에서 비롯된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죽음을 철저히 도시 한복판에 배치한다. 묘지가 도심 중심에 위치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며, 도시의 일상 리듬 안에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는 죽음을 단순한 종결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함께 기억하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다. 이는 파리 공동묘지를 통해 가장 명확히 드러나며, 장례문화의 물리적 배치와 사회적 인식 모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결국 프랑스의 도시 장례문화는 삶과 죽음, 기억과 예술, 공동체와 개인이라는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하나의 문화적 텍스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