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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

죽은 자의 날, 멕시코 장례문화의 축제적 풍경

by foco37god 2025. 7. 13.

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리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종교적 상징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장례를 슬픔과 고요함의 분위기로 채우는 반면, 멕시코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은 이를 기억한다.

매년 11월 1일과 2일에 열리는 ‘Día de los Muertos(죽은 자의 날)’은 멕시코 전역에서 죽음을 경축하는 축제의 날이다. 이 날은 단순한 추모일이 아니라, 사후 세계에서 잠시 돌아온 고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기념하는 자리로 여겨진다. 거리마다 꽃과 향, 설탕 해골, 알록달록한 제단(알타르)과 분장이 넘쳐나며, 무덤 앞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고인을 위한 음식과 이야기를 나눈다.

죽은 자의 날은 아즈텍 문명 이전의 선(先)스페인 원주민 신앙과 가톨릭 전통이 융합된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이 축제는 단순히 전통의 계승이 아닌, 멕시코인의 정체성과 공동체 연대,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복합적으로 반영한다. 본문에서는 죽은 자의 날의 기원과 구성, 알타르와 무덤에서의 장례 의례, 공동체와 가족의 역할, 그리고 이 문화가 세계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펴본다.

죽은 자의 날 제단 앞에서 고인을 기리는 멕시코 가족

 

선조 신앙과 가톨릭의 융합: 죽은 자의 날의 기원

 

죽은 자의 날은 멕시코 토착 신앙과 가톨릭이 절묘하게 결합된 문화로, 그 뿌리는 고대 아즈텍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즈텍인들은 죽은 자가 미클란(Mictlán)이라 불리는 저승으로 가는 여정을 4년간 거쳐야 한다고 믿었고, 이 여정을 돕기 위한 제의가 해마다 열렸다.

이후 스페인의 가톨릭 선교가 도입되며 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과 모든 영혼의 날(All Souls’ Day)이 합쳐져 현재의 형태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멕시코에서는 11월 1일은 어린 영혼들을 위한 날, 11월 2일은 성인들과 모든 망자를 기리는 날로 나뉘어 기념된다.

이 기념일은 단순한 추도일이 아니라, 죽은 자가 일시적으로 현세에 돌아오는 날로 여겨진다. 따라서 그들을 환영하고 모시는 풍습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기독교적인 부활의 개념과 토착 신앙의 순환 개념이 결합되어, 죽음을 비극이 아닌 자연스러운 이행으로 받아들이는 관점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죽은 자의 날은 멕시코의 다층적 역사와 종교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장례문화이자, 정체성의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다.

 

알타르와 무덤: 살아 있는 제단에서 죽은 이를 맞이하다

 

죽은 자의 날의 중심은 ‘알타르’라 불리는 제단이다. 대부분의 가정, 학교, 공공기관 등에서는 고인을 맞이하기 위한 정성스러운 알타르를 만든다.

이 제단은 고인의 사진, 좋아했던 음식, 술, 설탕 해골(calaveras de azúcar), 마리골드 꽃(cempasúchil), 초, 향 등으로 장식되며, 이는 고인의 영혼이 길을 잃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장치로 여겨진다. 각 물품은 상징성을 지니며, 예를 들어 마리골드는 영혼이 찾아오는 길을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향은 정화, 설탕 해골은 죽음을 웃음으로 재해석하는 문화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묘지에서는 가족들이 무덤을 청소하고 꽃으로 장식하며, 고인을 위한 음식을 차리고 음악과 대화를 나눈다. 밤이 되면 무덤 앞에 자리를 깔고 하룻밤을 보내는 가족들도 많다.

이 같은 행동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죽은 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장례 의례가 고인과의 작별이라면, 죽은 자의 날은 다시 만나는 ‘재회’의 날인 셈이다. 이러한 공간적, 상징적 행위는 멕시코 장례문화에서 죽음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축제와 공동체: 죽음을 기념하는 삶의 의식

 

죽은 자의 날은 단순한 가족 단위의 기념일을 넘어 마을 전체가 함께하는 공동체 축제다.

대도시에서는 행진과 퍼레이드가 열리며, 사람들은 해골 분장과 전통 복장을 입고 거리를 누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참여하며, 지역 학교와 문화센터에서도 다양한 교육 활동과 예술 행사가 이어진다. 이 축제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웃고 나누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멕시코인의 철학을 반영한다.

공동체 내에서 알타르 대회, 음식 나눔, 고인을 기리는 시 낭송 등도 함께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며, 이는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유연하게 만들고, 가족과 공동체 간의 정서적 유대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돌아가신 조상뿐 아니라 최근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추모가 집중되기 때문에, 애도와 축제가 한데 어우러진 특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죽은 자의 날은 멕시코 사회에서 슬픔을 치유하는 동시에 삶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는 의례이자 축제라 할 수 있다.

 

세계문화 속의 죽은 자의 날: 전통의 확산과 현대적 재해석

 

죽은 자의 날은 이제 멕시코를 넘어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서는 멕시코계 이민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전통이 이어지고 있으며, 디즈니 영화 『코코(Coco)』의 흥행 이후 그 인식도 더욱 널리 퍼졌다. 다양한 나라의 박물관과 문화 행사에서 알타르 전시나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죽음을 문화적으로 이해하는 창구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상업화와 문화 전유(appropriation)의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죽은 자의 날의 상징물들이 단순한 할로윈 장식처럼 소비되는 경향을 비판하며, 본래의 의미와 신성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멕시코 내부에서도 도시화와 개인주의 확산으로 인해 전통적 의례가 간소화되거나 생략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역 공동체와 문화예술가들은 죽은 자의 날의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새로운 형식의 장례문화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멕시코 장례문화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닌, 살아 있는 현재의 문화라는 사실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