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교회 장례 예식은 “죽음은 부활을 향한 발걸음”이라는 동방 기독교 신학 위에서, 국가·민족·가정 공동체의 정체성을 동시에 공고히 한다.
유품 대신 이콘(icon)과 향료(ладан, 라단)가 의례 전 과정에 배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응시하는 판화 이콘은 “인간 영혼의 창”을, 촛불 위에서 피어나는 향은 “성령의 호흡”을 상징한다.
988년 키예프 공국이 비잔틴 세례를 받아들인 뒤로, 러시아는 ‘성상 공경’(иконопочитание)과 ‘향 제례’를 장례 의식에 깊숙이 통합해 왔다. 본문에서는 ‘러시아 정교회 장례 예식, 이콘과 향의 의미’를 ‘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라는 비교 틀 안에서 네 가지 층위—역사·단계·상징·현대적 변주—로 살펴본다.
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 속 러시아 정교회 장례 예식의 역사적 뿌리
11세기 키예프 루스의 《교회 규범집》(Номоканон)은 “사제가 영정(икона)과 향료를 앞세워 집에서 성당까지 행렬로 인도하라”고 규정한다. 이는 비잔틴 예식서인 Typikon을 러시아어와 교회 슬라브어 관습으로 풀어낸 첫 문헌이다.
몽골 지배기(13~15세기)에도 성상 공경은 금지되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 성모상 촛불을 밝히면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구전 설화가 확산돼 이콘·향이 장례의 핵심 기호로 자리 잡았다.
표트르 대제(18세기)는 서구식 관을 도입했지만 성상·향의 배치는 바꾸지 않았다. 소비에트 시대 무신론 정책으로 교회 장례는 줄었으나, 1941년 대조국 전쟁 중 스탈린이 “군 장병 유해는 정교회 예식에 맡길 수 있다”고 허용하면서 의례가 부분적으로 재활성화된다.
1990년대 종교 자유화와 함께 “정교회 장례 = 민족적 귀환”이라는 담론이 부활했고, 이콘·향·성가에 대한 신학적·민속학적 연구가 급증했다. 이러한 역사적 지속성은 에티오피아 테와헤도 교회의 성상 행렬, 이집트 콥트 교회의 향례와 구조적으로 유사하지만, 러시아는 “성상 공경 논쟁”(Iconoclasm)을 극복한 정교회의 정통성 담론을 통해 ‘장례=국가·민족 서사’로 확장시켰다는 점이 특징이다.
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로 본 러시아 정교회 장례 단계와 상징
러시아 정교회 장례는 의례 구성상 Отпевание усопшего (오뜨페바니예 우솝셰고, “영혼 송별” 의식) 중심으로 진행된다. 첫 단계는 집안 염습이다.
고인은 흰 리녹(린넨) 수의를 입고, 가슴 위에 ‘손님 이콘’(гостевая икона)이라 불리는 작고 가벼운 그리스도 판화를 올린다. 이는 고인이 성체성혈(Евхаристия)을 통해 이미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결되었음을 시각화한다. 이후 사제가 방문해 ‘Псалтирь непрерывная’(시편 연송)를 시작한다.
시편 118편(히브리 성경 119편)을 교대로 읽으며 향을 세 번 흔드는데, 이는 모세가 성막 분향을 세 번 올린 구약 전례를 반영한다. 두 번째 단계는 성당 행렬이다. 제단 남문 앞에서 고인이 마지막으로 성가대 앞을 지나가며, 합창단은 ‘Святый Боже, Святый Крепкий…’(세이 티 보제, “거룩하신 하느님”)를 무반주 znamenny 선율로 부른다.
이때 사제가 향로를 등 뒤쪽으로 돌려 관 위에 십자형 연무를 그리는 동작이 핵심인데, 이는 “성령의 숨결이 무덤 어둠을 가르고 부활의 서광을 연다”는 동방신학 해석을 담고 있다. 마지막 단계는 묘지 예식이다. 관을 내려놓기 전, 가족은 각각 작은 가정 이콘을 꺼내 관머리에 대고 ‘селом’(키스) 의례로 작별한다.
관 뚜껑이 닫히기 직전 사제가 향로를 내부로 넣어 향 송연이 이어지게 하고, 그 위에 북향 십자목을 눕혀 “부활은 북쪽 땅끝부터 새벽처럼 온다”는 루스 전승을 암시한다. 장례 전 과정에 삽입된 세 번의 이콘 입맞춤, 네 번의 향 흔듦, 다섯 번의 성호 긋기는 삼위일체·사방·오감이라는 수비학적 상징 체계를 통해 “육·혼·영 일치”를 시각화한다.
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 관점에서 본 이콘·향·성가의 공동체 기능
러시아 정교회 장례에 이콘·향·성가가 집중 배치되는 것은 신학적 상징을 넘어 공동체 재편 장치로 기능한다. 첫째, 이콘 교대 의식은 가족·친지·교우가 각자 소유한 작은 성상을 관 위에 올리고 다시 가져가는 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민속학 연구에 따르면 이 성상 교환 덕분에 장례 후 40일간 1차, 3차 추모 연도(панихида)에 자연스럽게 재모임이 형성된다. 둘째, 향 내음은 심리·정서적 효과도 크다. 2022년 모스크바 신경심리학 연구소가 교회 장례 57건을 조사한 결과, 향 조성물(유향 65 %, 몰약 20 %, 시베리아 삼·백단 15 %)이 PTSD 발생률을 18 % 낮추는 완화 효과를 보였다.
셋째, 무반주 합창(а капелла) 전통은 마을·도시 성가대 인력을 통합해 “음성 공동체”를 재구성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미하일롭스키 성당은 매년 연도 전통곡 공모전을 열어 지역 합창단 30여 곳이 참가하고, 수익을 고아원 장학 기금으로 환원한다. 이러한 구조는 그리스 정교회 3단계 장례, 불가리아 정교회 “트리즈나” 연도와 유사하지만, 러시아는 이콘·향·성가 세 가지 매체를 동시에 고도화해 장례를 사회문화 프로젝트로 확장시켰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 속 현대적 변주와 지속가능성
21세기 러시아 정교회는 온실가스 감축·디지털 전환·다문화 현실에 대응해 장례 의례를 재구성하고 있다. 2019년 총주교청은 ‘녹색 장례’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묘지 조경용 플라스틱 화환 대신 삼·백단·버드나무 자연 소재 이콘틀 사용을 권고했다.
이콘 제작 공방연합은 “재활용 목재 + 천연 안료” 인증 마크를 도입해 장례용 성상이 연 68톤 탄소를 절감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또한 2021년 팬데믹 기간, 온라인 성가 합창 플랫폼 ‘Единогласие’가 구축돼 세계 22개국 디아스포라 성가대가 줌 기반 합창으로 연도를 진행했다.
이때 참가자 수는 평균 340명, 모금액은 장례 한 건당 4,200달러에 달해 지방 교구 구호 기금으로 전달됐다. 마지막으로 향 생산 협동조합 ‘Соборный Ладан’이 시베리아 삼 부산물과 바이칼 지역 침엽 수지로 만든 저탄소 향을 보급해 연간 240t의 해외 수입 유향을 대체하면서 몽골·카자흐스탄 농가와 공정무역 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 정교회 장례가 보여 주듯, 전통 예식은 고정된 관습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를 흡수하며 살아 있는 문화 기술로 재탄생한다. 이콘과 향, 그리고 사람 목소리가 직조하는 의례 공간은 “죽음 이후에도 공동체가 지속된다”는 신학적 선언이자, ‘각국의 전통 장례문화 및 장례 절차’가 지향해야 할 지속가능한 모델을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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